<지상파를 떠나자> Media

취업 준비를 하는 후배이자 제자들의 안부를 묻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SBS가 사정이 좋지 않다는 걸 들어서인지, 올해 SBS에서 신입사원을 뽑는지 물어보더군요. 아는대로 대답을 해주고 제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TV보니?

대답은 짐작 하시다시피... 그나마 제게 위안에 되는 대답은 저는 'POOQ'을 열심히 본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말에 제가 반문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즐겨 이용하지도 않는 미디어에 뭐하러 취업 준비를 하니? 너희도 이용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불확실한 곳인데..."

이제 SBS는 하루에 15개에서 17개에 이르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힘겹습니다. 드라마와 뉴스, 교양 프로그램은 돈 먹는 하마가 되었습니다. 다른 장르는 모르겠지만, 드라마는 돈 먹는 하마가 된 거 확실합니다.

좋은 작가와 프로듀서는 타사에서 많이 모셔갔습니다. 그 타사는 대기업의 후광으로 인해 뒷배가 든든합니다. 하루에 본방송 대신 재방송을 많이 하고, 게다가 중간광고까지 해서 광고 효율이 좋습니다. 좋은 인재가 모여있고, 제작비를 많이 투여할 수 있으니,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습니다.

지상파에 중간 광고가 허용된다해도, 광고 시장에서 걷어 드릴 수 있는 매출액은 뻔합니다. 그마저 인터넷 등 뉴 미디어로 광고 빌링의 많은 부분이 옮겨 가고 있기에, 이제 와서 중간광고가 지상파의 매출을 올려줄 재원으로 보기도 힘듭니다. 하나 안하나 별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지난 번 고성의 산불 사태에서도 봤습니다만, 국가 재난 방송에서도 지상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올림픽 등 대형 미디어 이벤트는 이제 수익성이 떨어져서, 지상파가 중계권을 따겠다는 것은 도발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전쟁과 같은 국가 재난 상태가 터진다 해도 지상파 대신, 위성방송이나 DMB가 역할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상파에는 노조라는 조직이 있습니다. 노조가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회사의 중요 의사 결쟁에 노조의 입김이 세지고 있기에, 지상파는 체질 개선과 변화를 위한 의사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옮기는 것에 아주 둔해졌습니다. 미디어의 공룡입니다.

시장에서 효용이 떨어지고 경쟁에 뒤처지는 플레이어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한국 시장에서 지상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지상파에 오래 근무했고, 미디어 관련 공부를 했던 언론학도인 저로서도 도무지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후배이자 제자인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을 했습니다.

"지상파의 미래는 불안하다. S, K, M보다는 jtbc나 tvn을 겨냥해라. 그런데, TV 자체가 불안하니, 그점은 각오라하. 곧 Amazon이나 HULU, 디즈니TV, 애플TV등, 대국의 OTT가 한국에 진출할 것이고, 사업을 확장할 것이다. 그 회사들을 노려라.  그도 아니면, 너희들끼리 모여서 재미있는 콘텐츠를 기획해서 YouTube 등 인터넷에 올려라. IP를 가진 크리에이터가 되거라"

집에 오면서 제가 해준 조언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제가 틀린 말을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지상파가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요? 지상파가 기존에 했던 역할을 jtbc, tvn, ytn, 스카이라이프가 대신하면 되는데 말입니다. 참... 신문사들도 지상파와 별반 다른 처지는 아니니, 취준생들께서는 신문사 지원도 심각하게 고려하셔야 합니다.

제 말이 틀렸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리 대단한 반론을 기대하진 않습니다. 비가 옵니다.

p.s.: MB정권 이후 시작된 '지상파 죽이기 정책'은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 같습니다. 정권의 정책이 이렇게 잘 작동한 예는 별로 없으니, 행정학자들께서 이 케이스는 연구할 만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 2. 해치



주 68시간 근무 제도.

이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올 하반기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드라마 제작 현장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노동 현장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주 68 시간 체제에서 제작을 해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 68시간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15시간 근무를 4일에 8시간 근무 1일 정도를 더해 제작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주 5일 근무입니다. 아침 8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밤 11시에 끝나는 날이 4일 정도, 나머지 하루는 8시간을 더 촬영할 수 있습니다. 일정을 시작한 후, 촬영 장소를 이동한다면 그것도 근무 시간에 포함됩니다.

촬영 시작 전부터 노동 시간에 관련한 현장에서의 잡음이 들려왔고, 몇 드라마에서는 제작사의 대표나, 제작 책임자가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기삿 거리가 된 드라마는 아예 전 스태프가 관계 기관으로부터 인터뷰를 당하는 등, 법 집행의지와 스태프의 반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제작을 시작해보니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 촬영일수가 늘어났다.

제도 도입 이전에는 16부작을 제작할 때, 보통 총 촬영 일수 100일 정도를 예상합니다. 24부작일 때는 보통 150일 정도의 촬영 일수를 예상하고 예산을 수립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장르나 , 연출자마다 다른 촬영 속도에 따라 촬영 일수는 차이가 납니다. 사극은 지방 촬영이 많고, 촬영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어, 촬영 일수가 더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해치>는 24부작 이어서 애초에 150일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 아래에서는 150일에 촬영을 마치는 게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20일 정도의 추가 촬영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170일 정도의 일정으로 예산을 수립했습니다.

2. 촬영일정의 변화

과거에는 아침7시에 시작해서 밤12시에 촬영을 마치는 것으로 하루 촬영일정을 잡았습니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를 다 쓰면서도, 스태프의 수면 시간은 보장하겠다는 의도로 일정을 수립하는 것이죠. 현실은 항상 자정을 넘어 새벽 두 세시에 끝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해치>팀은 대부분 오전 8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에 끝나는 일정이 주었고, 제작진의 촬영 속도와 진행이 원활한 편이어서 이 일정을 잘 지켜졌습니다. 밤 씬이 많은 날은 아예 오후 늦게 모여서 밤을 새는 스케줄이 작성되었습니다. 오후 4시에 모여서 밤새 촬영하는 거죠.

3. 휴게 시간이 생기다.

과거에는 촬영 일과 촬영 일 사이에 휴게시간이 반드시 있지 않았습니다. 해서 새벽 두세 시에 끝나도, 다음날 아침 7시에 모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촬영 종료 후, 대중 사우나나 찜질방에 스태프를 내려주고, 씻고 잠시 눈을 붙이게 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로 8시간 정도의 휴게 시간을 보장했습니다. 휴게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이 참 좋더군요.

4. 스태프들이 목소리를 내다.

촬영을 하다보니 주어진 시간을 넘어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뭐.... 그냥 찍었습니다. <해치>를 촬영 하면서도 서너 번 시간을 넘겼습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 정도.. 그때마다 스태프들... 희안하게 각 스태프의 수장들보다는 어린 스태프를 대표하는 퍼스트 급에게 주로 의견을 청취하더군요. 이런식이죠.

"오늘 두 시간 넘어가는데... 양해해 주시겠어요, 아님 다른 날로 촬영을 넘길까요?"

이렇게 양해를 받아 촬영을 계속한 적이 있습니다. 심각하게 촬영 시간을 초과할 것이 분명히 예상될 때는, 아예 연출부가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고 했습니다만, 아무튼 현장에 있는 어린 스태프의 의견을 들어 일정을 조절하는 것은 저로서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5. 결론

<해치> 제작진은 노동시간을 지켰습니다. 촬영일수 170일을 예상했으나 169일에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주 68시간 노동을 정말 겨우 맞췄습니다. 만약 올 하반기에 도입되는 주 52시간 체제에서 일했다면, 저는 노동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경력 26년이 넘어가는 숙련된 연출이고, 비교적 촬영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그런 제가 이 근무 시간을 겨우 맞추어냈다는 것은, 대한민국 드라마 대부분의 연출자나 제작진은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출자로서 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체력을 극한까지 써가면서, 졸음과 싸우면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 현장 여기저기에 고개를 기대고 졸고 있는 스태프가 없어서, 현장에 생기가 넘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작자의 입장이라면, 걱정이 많습니다. 돈이 많이 듭니다. 새로운 제도 속에서 드라마 제작을 하려면, 촬영 일수가 늘어나야 하며 촬영 일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촬영 일수를 확보하려면 제작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상파의 경우) 드라마의 수익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별도로 하기로 하고...) 드라마의 수익성은 줄어드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합니다. <해치>도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수십억의 적자를 봤습니다.

MBC가 월화드라마를 없앴습니다. SBS도 올 여름 월화드라마를 두 달 동안 방송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상파가 새롭게 택한 전략이고, 앞으로 드라마는 (지상파에서는) 점점 더 줄어들 것입니다.

아마도 단순히 근무 시간을 노동자에 이롭게 바꿨다는 것보다, 더 큰 여파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지, 어떻게 변화에 대응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1. 해치

'해치'를 제작하면서 보니, 그 사이 제작현장이 많이 변했더군요. 이를 테면, 주 68시간 근무를 지켜야 했고, 제작진 내부에서의 성평등 이슈도 과거에 비해 중요해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시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변화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소소하게 겪은. 또는 주도한 변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우선 태블릿PC 대본.

이번에 연출하면서 저는 책으로 만든 대본을 중반 이후에는 들고 다니지 않았어요. 예전에 대본이 여유있게 나왔을 때는 책에다 콘티를 하고, 점검을 하며 촬영했고, 여유가 없을 때는 이른 바 쪽대본, A4용지에 인쇄해서 대본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아래와 같이 태블릿 PC에 대본을 pdf 파일로 받아, 어플을 이용해 실행시키고, 사용했어요. 

이런 전자책 대본은 ,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글자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편집실 등 후반 작업 팀에 실시간으로 연출의 콘티를 공유할 수 있으며, 태블릿 PC에 여러 회차의 대본이 들어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단점으로는 역시 밧데리가 방전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것, 예전 대본은 간혹 집어 던지는 등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던질 수 없다는 것, 간혹 조작을 잘못하면 밤새 짠 콘티를 한 번에 날려먹을 수 있다는 점이 었습니다.

결론을 내려보면 앞으로도 태블릿PC를 현장에 가지고 다닐 것 같습니다.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군요. 저는 앞으로 독서도 전자책을 많이 이용할 것 같습니다. 노안이 온 나이여서, 활자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맡으며 처음 산 책은 전자책을 택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종이파였는데, 이제 스크린파로 전향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 테블릿PC의 캡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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