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집필 시스템이 필요하다 Media

드라마 업계가 다시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사전 기획이나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더욱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본 집필이 그렇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드라마를 편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대본이 필요 없었습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소개한 시놉시스로 편성이 되었고, 그것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으며, 이미 출연 확정된 배우들과 연습실에서 처음 나온 대본을 읽곤 했습니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배우들이 캐스팅 전에 대본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드라마를 편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려면 최소한 시놉시스에 대본 2회 분은 쥐고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두 권 만으로는 좋은 캐스팅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최근 그 경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대본 10권은 써 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추동은 이제 배우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요구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청률과 관계 없이, 드라마가 설정한 세계관이 끝까지 충실히 구현되는 내적 완성도가 있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팬덤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이 제작자로서 가장 확실한 위험회피 전략입니다. 실시간 시청률이 좋지 않더라도, 팬덤이 형성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고 VOD 수입이 올라옵니다. 광고 수입이 떨어지더라도, VOD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나라의 제작자와 작가들은 인식을 바꾸셔야 합니다. 시놉시스와 대본 몇 권으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기에는, 이제 경쟁자가 너무 많습니다. 오랫동안 시청자를 속여왔지만, 이제 더이상 속이기 쉽지 않습니다.

16부작이면 10부작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드라마 용두사미, 기승전연애라는 오욕을 벗습니다. 이 대본 쓰고 찍느라 이 돈을 썼냐는 조롱을 피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업계에 가장 많은 변화를 목격한 것이 2017년 이었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화두가 사전 대본 집필인 것 같습니다. 이제 보던 드라마는 끝까지 탄력받아 본다는 ... 그 탄력이 없어진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2017 <당신이 잠든 사이에> 추석 연휴에도 방송합니다. 드라마를 찍다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흘 간의 연휴가 생기면서, 연휴 기간에 방송하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연휴 기간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많기에, 그 시기에 방송은 시청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영화를 방송해, 드라마의 시청률을 방어했습니다. 이번에 저도 이 부분 관심을 두고 연휴 기간의 드라마 방송 여부를 편성과 논의해서 확정했습니다. 알아보니 연휴 기간 저녁에 방송하는 드라마는 전체 가구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하는 게 유리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략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명절 당일 오후 2시이면 귀성객의 이동이 끝납니다. 저녁에 방송하는 드라마 시간대는 전체 가구 시청 인원수가 오히려 증가합니다. 저녁 먹고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TV 앞에 모인 것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둘째, 저녁 시간대에 유동적인 시청 층은 이미 모바일, IPTV, 1인 미디어로 시청 행태가 바뀌어서, 실제의 실시간 시청에는 이미 영향을 주지 않는답니다.

셋째, 연휴의 효과로 전체 가구 시청률이 줄어드는 시기는 오히려 연휴가 끝난 직후의 주간이랍니다. 오랜만에 쉬고 일상에 복귀에 친구들, 직장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넷째, 연휴의 같은 시간대 경쟁사는 드라마를 계속 방송하고, 우리는 영화를 편성할 때, 당연히 경쟁사는 시청률에 반사 이익을 얻습니다. 업계의 용어로 '경쟁사가 독탕을 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표현합니다.

과거 제가 담당했던 박혜련 작가, 조수원 연출의 '피노키오'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신년 저녁에 방송하면서 크게 시청률이 오른 예가 있더군요.이런 이유로...

9월 27일 방송을 시작하는 새 수목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연휴 기간에도 방송합니다. 연휴 기간 낮시간을 통해 엄청난 재방송 폭탄을 터뜨릴 예정입니다. 종방을 향해 달려가는 '언니는 살아 있다'도 역시 방송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SBS 드라마도 많이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7 <다시 만난 세계> 종방 소감 드라마를 찍다

2017 SBS의 7월 수목드라마 '다시 만난 세계'가 끝났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죽은 사람이 갑자기 돌아올 수도 있다는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나온 얘기입니다. 이 드라마에는 12년 후에 갑자기 돌아온 '성해성'이란 캐릭터가 나왔습니다. 성해성(여진구 역)이란 친구가 12년만에 돌아와 자신의 죽음으로 상처입고 살아가던 정정원(이연희 역)을 비롯해 가족과 친구들을 치유해주고, 몇 개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처음 드라마의 기획안을 읽고 연출자 백수찬 PD에게 다시 나타난 '성해성'이란 존재가 뭔지 대답이 준비되어 있냐고 물었습니다. '유령'인지, '빙의'인지, 아니면 '살아있는 좀비'인지 제작진은 그 해답을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연출자가 제게 한 대답은. 어떤 것을 절실히 원한다면, 나타나서 도와주는 '천사' 같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제 고정 관념 속에 천사는 등 뒤에 날개가 달리고,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존재였는데 '다만세'의 '천사'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삶은 항상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죽음을 남의 일인냥, 영원히 살것처럼 행동합니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죽음을 삶과 함께 맞닿게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결과가 아쉬웠지만, 저는 '다시 만난 세계'의 도전적인 기획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를 간절히 기다리면, 간혹 그들이 돌아올 수 있다는 상상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아주 느린 드라마였습니다. 보통의 드라마가 A4용지 35장 정도로 대본이 나오는데, 이 드라마는 29페이지에서 32페이지였습니다. 그렇게 적은 페이지 수를 가진 대본으로도 매주 분량이 넘쳐 5분 이상을 쳐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양이 많았는데 왜 이렇게 심심했어?'하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궁색합니다만, 악을 쓰지 않고, 천천히 또박또박 대사를 전하는 그런 리듬은, 최근의 드라마 유행에는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달랐습니다.

드라마의 내용과 관계없이, 시청하는 동안 제게 '천사'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살면서 당한 여러 차례의 위기의 순간에, 홀연히 나타나 저를 헌신적으로 도와준 분들이 제게는 '천사'였던 것 같습니다. 연락도 자주 못하지만, 과거 한 차례 저에게 천사의 손길을 보내 준 그 분들은, 제게는 그들이 천사인지도 모르고 삶을 살아가고 계시겠지요. 저도 아마 누군가에게 천사와 같은 날갯짓을 살짝 했을 수도 있고요. 서로에게 했던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은 없어지더라도 업보처럼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습니다.

삶의 뒷면에 죽음이 단단하게 붙어 있으니, 평생 살 것처럼 살지 말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말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옵니다. 누군가의 천사는 될지언정, 악마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시 만난 세계'가 끝났습니다. 다음 주에는 '당신이 잠든 사이에'를 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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