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친인척2

저의 집 아이들은 제 드라마 끝 무렵에는 한 번 정도 스튜디오에 놀러 옵니다. 오랫동안 집에 못 들어온 아빠를 만난다는 핑계지만 유명인들을 한 번 보려는 엄마의 계략이 있답니다. 아직 어려서인지 연예인을 만나는 순간 아이들은 상당히 충격을 입은 듯, 본색을 숨기고 마냥 수줍어 합니다.

며칠 전 이야기...

여섯 살 짜리 둘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성연아, 요즘 아빠 드라마 재미있어?"

둘째의 대답은...

"아빠, 드라마는 역시 '일지매'가 최고고, 그 다음은 '미남이시네요', 그리고 '아내가 돌아왔다'예요."

그러자, 아빠는 살짝 마음에 기스가 갑니다. 하지만 참고 말합니다.

" 그래? 그럼 이번에도 아빠 촬영장에 한 번 놀러와야지."

둘째의 대답이 아빠의 마음을 아주 찢어 놓습니다.

"아빠, '아내가 돌아왔다' 촬영장엔 안 가도 돼요. 근데 일지매 이준기 '히어로우' 촬영장엔 꼭 가볼거야. 거기서 만나."

성연아, 이준기의 '히어로우'는 MBC란다. 너는 SBS에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산단다.

준기군의 '히어로우'가 오늘 첫방이랍니다. 용PD는 SBS를 사수하겠지만, 용PD의 아들은 배신 때린답니다.
'히어로우'의 선방을 기원합니다.

by 용PD | 2009/11/18 12:37 | Media | 트랙백 | 덧글(4)

일일 드라마 연출하기

별 시끄러운 움직임도 없이 제가 연출하는 일일드라마 [아내가 돌아왔다]가 이 주째 방송이 나가고 있습니다. 성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120회까지의 여정에 아직도 110회의 잔여분이 남아있음을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합니다. 조민기씨는 현장에서 이런 기분을 두고 '매주 빚을 갚아 나가는 기분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어쩌다 저는 120회나 되는 할부 전자제품을 샀을까요?

이런 부채 감을 느끼면서 연출자로서 저의 자세도 조금씩 변하고 있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잘 하겠다.'라는 욕구에 충만해서 시작했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촬영량에 시달리면서 어느덧 '조금만 잘하겠다.'라는 자세를 바뀌었답니다. 그러더니 오늘 입시 추위에 온 스태프와 배우들이 양수리에서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밤 촬영을 하면서 드디어 제 입에서 새로운 독트린이 나왔습니다.

"적당히 못 만들어서 회사의 높은 사람들이 이용석 PD는 일일 드라마 연출시키지 말라는 소리가 나오도록 해야지."

그러나 방송 스태프와 연기자들의 대충이 녹녹하지 않습니다. 모두 자기 이름을 걸고 하기에 '대충하라'는 저의 성화에 맞서며 모두들 꿋꿋하게 자기 할 일을 챙깁니다. 저의 '대충 연출하기'와  나머지 제작진의 '끝까지 버티기'는 채무를 갚아나가는 내년 4월까지는 계속될 겁니다.

일일드라마 연출은 매일 방송을 내보내서 불리는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다가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야외촬영, 목요일에는 편집과 녹화용 콘티대본 작성, 금요일, 토요일에는 스튜디오 녹화를 하는 스케줄이 쳇바퀴처럼 돌아옵니다. 촬영이나 녹화를 마친 심야에 작가 선생과의 대본 회의도 하고, 방송본 믹싱을 준비하며 음악 편집에도 관여합니다. 방송용 완제품을 만드는 조연출과는 거의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지내다 가끔 재회를 합니다. 대신 가족보다 자주 만나는 배우들과는 그 어떤 장르의 드라마보다 끈끈한 스킨십을 맺어갑니다. 

하루 32분에서 34분의 런닝타임을 가진 드라마 다섯 개를 만드는 작업은 정말 중노동입니다. 저 자신이 이런 노동 공정에 빠져보니 그간 일일드라마를 제작해온 선후배 드라마 프로듀서들의 고생을 새삼 실감합니다.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이 이 정도로 만드는 핑계를 시청자들께서 이해하시고 그래도 제 드라마를 좋아해 주길 바랍니다.

아들놈의 생일이자 십 여년 만에 입사 동기들이 만나는 날, 저는 [아내가 돌아왔다]의 배우와 연기자와 촬영을 했습니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돌'팀과 보낸 오늘이 아쉽지는 않습니다. 날이 추워집니다.

by 용PD | 2009/11/12 03:20 | 아내가 돌아왔다 | 트랙백 | 덧글(10)

감독의 친인척

촬영만 들어가면 일정에 치어 세상에 없는 불효자, 형제가 되는 게 드라마 연출이란 직업입니다. 어쩌다 촬영 현장에 친인척이 찾아오셔도 제대로 환대를 못해드립니다. 얼마 전 [아내가 돌아왔다] 야외촬영장에 칠십이 넘으신 부모님들이 찾아오셨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 처가 어딘가에 남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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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작년에 있었던 일.

한창 <일지매> 촬영 중일 때, 울 시누이가 가족들과 녹화현장에 다녀오셨다.
출연진들과 사진도 찍고 싸인도 받고 구경도 하고... 다녀오셔서 전화를 주셨다.

울시누: 가서 재미있게 구경 잘 하고 왔어. 근데말야....            
           다른 사람들은 다 열심히 일하고 고생하는데,
           용석이는.... 별로 하는 일이 없더라?

나 : 네...??

울시누: 그냥 앉아서 "액션!" 하고 소리만 지르고 TV만 보던데?

나 : 아~ 그건 그냥 TV가 아니라 감독용 모니터예요.     
      그리고, 촬영현장의 모든 일들이 용석씨 감독 하에 진행되는 거예요.

울시누: 응. 근데 별로 힘들어 보이진 않더라.

<일지매>가 한창 방송 중일 때 시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시어머님 : 어휴, 어제도 너무 재밌더라~~

나 : 네 ^_^

시어머님 : 화면도 너무 아름답게 잘 찍고~~               
               근데 용석이가 언제 그렇게 사진찍는 걸 배웠는지 모르겠다.

나 : 네.....????? 

시어머님 : 촬영을 참 잘 하더라.

나 : (완전 어리둥절) 어머니, 촬영은....... 용석씨가 하는게 아니라 촬영감독이 하는건데요.

시어머님 : 그래? 난 지금껏 용석이가 직접 촬영하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얼마전 추석무렵.

시부모님께서 11월 방송될 <아내가 돌아왔다> 촬영현장에 다녀오셨다.
그동안 아들 일하는데 방해되기 싫으시다고 한번도 안 가셨던 터라
이번에 처음으로 촬영현장을 방문하신 거였다.

나 : 어머니, 촬영하는 거 보시니까 어떠셨어요?

시어머님 : 응, 아주 재미있더라                
               조민기는 화면보다 훨씬 멋있고, 강성연도 화면보다 너무 이쁘고....

나 : 네 ^_^

시어머님 : 근데 말이다.......                 
               용석이는 거기서 별로 하는 일이 없더라?   
                난 아직도 걔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울 시댁식구들..... ㅋㅋㅋㅋ
너무 무심하신거 아냐?  아님 너무 쿨하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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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초에는 고모님이 친구분들과 방문하시는데 이번에는 일하는 티좀 팍팍 내야겠습니다.

by 용PD | 2009/10/26 08:13 | 좌고우면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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