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 2. 해치



주 68시간 근무 제도.

이 얘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군요. 올 하반기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드라마 제작 현장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노동 현장에 적용된다고 합니다. 저는 이번에 주 68 시간 체제에서 제작을 해봤습니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 68시간을 현장에 적용하려면, 15시간 근무를 4일에 8시간 근무 1일 정도를 더해 제작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주 5일 근무입니다. 아침 8시에 촬영을 시작하면 밤 11시에 끝나는 날이 4일 정도, 나머지 하루는 8시간을 더 촬영할 수 있습니다. 일정을 시작한 후, 촬영 장소를 이동한다면 그것도 근무 시간에 포함됩니다.

촬영 시작 전부터 노동 시간에 관련한 현장에서의 잡음이 들려왔고, 몇 드라마에서는 제작사의 대표나, 제작 책임자가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기삿 거리가 된 드라마는 아예 전 스태프가 관계 기관으로부터 인터뷰를 당하는 등, 법 집행의지와 스태프의 반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제작을 시작해보니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1. 촬영일수가 늘어났다.

제도 도입 이전에는 16부작을 제작할 때, 보통 총 촬영 일수 100일 정도를 예상합니다. 24부작일 때는 보통 150일 정도의 촬영 일수를 예상하고 예산을 수립합니다. 물론 드라마의 장르나 , 연출자마다 다른 촬영 속도에 따라 촬영 일수는 차이가 납니다. 사극은 지방 촬영이 많고, 촬영 준비에 시간이 많이 들어, 촬영 일수가 더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해치>는 24부작 이어서 애초에 150일 정도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 아래에서는 150일에 촬영을 마치는 게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20일 정도의 추가 촬영이 필요하다고 요청해 170일 정도의 일정으로 예산을 수립했습니다.

2. 촬영일정의 변화

과거에는 아침7시에 시작해서 밤12시에 촬영을 마치는 것으로 하루 촬영일정을 잡았습니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하루를 다 쓰면서도, 스태프의 수면 시간은 보장하겠다는 의도로 일정을 수립하는 것이죠. 현실은 항상 자정을 넘어 새벽 두 세시에 끝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해치>팀은 대부분 오전 8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에 끝나는 일정이 주었고, 제작진의 촬영 속도와 진행이 원활한 편이어서 이 일정을 잘 지켜졌습니다. 밤 씬이 많은 날은 아예 오후 늦게 모여서 밤을 새는 스케줄이 작성되었습니다. 오후 4시에 모여서 밤새 촬영하는 거죠.

3. 휴게 시간이 생기다.

과거에는 촬영 일과 촬영 일 사이에 휴게시간이 반드시 있지 않았습니다. 해서 새벽 두세 시에 끝나도, 다음날 아침 7시에 모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촬영 종료 후, 대중 사우나나 찜질방에 스태프를 내려주고, 씻고 잠시 눈을 붙이게 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로 8시간 정도의 휴게 시간을 보장했습니다. 휴게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이 참 좋더군요.

4. 스태프들이 목소리를 내다.

촬영을 하다보니 주어진 시간을 넘어가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뭐.... 그냥 찍었습니다. <해치>를 촬영 하면서도 서너 번 시간을 넘겼습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 정도.. 그때마다 스태프들... 희안하게 각 스태프의 수장들보다는 어린 스태프를 대표하는 퍼스트 급에게 주로 의견을 청취하더군요. 이런식이죠.

"오늘 두 시간 넘어가는데... 양해해 주시겠어요, 아님 다른 날로 촬영을 넘길까요?"

이렇게 양해를 받아 촬영을 계속한 적이 있습니다. 심각하게 촬영 시간을 초과할 것이 분명히 예상될 때는, 아예 연출부가 새로운 일정을 수립하고 했습니다만, 아무튼 현장에 있는 어린 스태프의 의견을 들어 일정을 조절하는 것은 저로서는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습니다.

5. 결론

<해치> 제작진은 노동시간을 지켰습니다. 촬영일수 170일을 예상했으나 169일에 촬영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주 68시간 노동을 정말 겨우 맞췄습니다. 만약 올 하반기에 도입되는 주 52시간 체제에서 일했다면, 저는 노동 시간을 맞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경력 26년이 넘어가는 숙련된 연출이고, 비교적 촬영 속도가 빠른 편입니다. 그런 제가 이 근무 시간을 겨우 맞추어냈다는 것은, 대한민국 드라마 대부분의 연출자나 제작진은 이 조건을 맞추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연출자로서 저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체력을 극한까지 써가면서, 졸음과 싸우면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촬영 현장 여기저기에 고개를 기대고 졸고 있는 스태프가 없어서, 현장에 생기가 넘치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제작자의 입장이라면, 걱정이 많습니다. 돈이 많이 듭니다. 새로운 제도 속에서 드라마 제작을 하려면, 촬영 일수가 늘어나야 하며 촬영 일수를 확보해야 합니다. 촬영 일수를 확보하려면 제작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상파의 경우) 드라마의 수익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별도로 하기로 하고...) 드라마의 수익성은 줄어드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합니다. <해치>도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수십억의 적자를 봤습니다.

MBC가 월화드라마를 없앴습니다. SBS도 올 여름 월화드라마를 두 달 동안 방송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상파가 새롭게 택한 전략이고, 앞으로 드라마는 (지상파에서는) 점점 더 줄어들 것입니다.

아마도 단순히 근무 시간을 노동자에 이롭게 바꿨다는 것보다, 더 큰 여파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변화가 더욱 가속화될지, 어떻게 변화에 대응할지..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입니다.


해치를 연출한 전과 후1. 해치

'해치'를 제작하면서 보니, 그 사이 제작현장이 많이 변했더군요. 이를 테면, 주 68시간 근무를 지켜야 했고, 제작진 내부에서의 성평등 이슈도 과거에 비해 중요해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시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변화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제가 소소하게 겪은. 또는 주도한 변화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우선 태블릿PC 대본.

이번에 연출하면서 저는 책으로 만든 대본을 중반 이후에는 들고 다니지 않았어요. 예전에 대본이 여유있게 나왔을 때는 책에다 콘티를 하고, 점검을 하며 촬영했고, 여유가 없을 때는 이른 바 쪽대본, A4용지에 인쇄해서 대본을 들고 다녔습니다. 이번에는 아래와 같이 태블릿 PC에 대본을 pdf 파일로 받아, 어플을 이용해 실행시키고, 사용했어요. 

이런 전자책 대본은 , 어두운 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고, 글자의 크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며, 편집실 등 후반 작업 팀에 실시간으로 연출의 콘티를 공유할 수 있으며, 태블릿 PC에 여러 회차의 대본이 들어가 가볍다는 장점이 있더군요.

단점으로는 역시 밧데리가 방전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는 것, 예전 대본은 간혹 집어 던지는 등 무기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던질 수 없다는 것, 간혹 조작을 잘못하면 밤새 짠 콘티를 한 번에 날려먹을 수 있다는 점이 었습니다.

결론을 내려보면 앞으로도 태블릿PC를 현장에 가지고 다닐 것 같습니다. 장점이 단점보다 훨씬 많군요. 저는 앞으로 독서도 전자책을 많이 이용할 것 같습니다. 노안이 온 나이여서, 활자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맡으며 처음 산 책은 전자책을 택했습니다. 과거에 저는 종이파였는데, 이제 스크린파로 전향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제 테블릿PC의 캡쳐본


또라이 제로 조직 Media

또라이 제로 조직 - 10점
로버트 서튼 지음, 서영준 옮김/이실MBA

리더나 중간 관리자는 부하나 후배에게 함부로 화내서는 안된다. 좋은 조직은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모든 의견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도움이 되는 내용은 또라이 리더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하냐는 것이다.

급류에 휩쓸렸을 때, 발버둥 치지 말고.. 물에 따라 흘러가면서 오히려 발을 쭉뻗고 충돌을 예방하며,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같이 또라이와는 정면 대결을 피해야 한다. 급류를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니, 지나가리라는 희망을 갖고, 충돌을 예방해야 한다. 피해자까리 공동체를 만들어, 공감대를 이루고, 서로를 위로해 줘야 한다.

간단한 이야기를 길게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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