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두의 추리 책방 - ![]() 홍윤(물만두) 지음/바다출판사 |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블로거 홍윤씨가 있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주로 읽으면서 알라딘 블로그 서재에 방대한 서평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블로그에 담긴 추리소설 서평을 모아 낸 책이 [물만두의 추리 책방]입니다. 책이나 영화를 고를 때 가장 정직하고, 공정한 추천을 해 줄 사람은 주위에 있는 친구들입니다. 책 읽는 친구들이 많이 사라진 요즘은 인터넷의 블로거들이 그런 친구 같은 사람입니다. 물만두는 그런 의미에서 제 친구이겠죠. 그녀의 글은 그렇게 냉혹하진 않습니다. 잘 된 소설에는 후한 칭찬을 보냈지만 잘 안된 작품에는 `안타까움`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녀의 안타까움이 깃든 소설은 피하고 칭찬을 들은 추리소설을 골라 쟁여두고 있습니다. 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게 해준 그녀의 수고에 고마울 따름이죠. 같은 블로거 입장에서 저는 물만두의 글에 놀랍니다. 저는 책과 영화를 평할 때 일정한 기준과 잣대를 들이댑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글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책과 영화가 각각의 생명과 스타일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평도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글의 수가 늘어날수록 차별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저의 블로그의 글 수가 줄어드는 것은 바로 이런 부담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년간 1800여편의 블로깅을 한 물만두의 글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많은 독서와 글쓰기를 하였건만 그녀의 글은 매번 따뜻한 애정의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그녀에게는 추리 소설이 그만한 애정의 대상이었나 봅니다. 아마 제가 글을 쓸 때마다 차별점을 찾지 못해 힘든 것은, `제 손가락 깨물듯` 다른 이의 작품에 애정이 없어서 일겁니다. 그래서 [물만두의 추리책방]에 올려진 200편의 블로그는 모두 곱씹는 맛이 있습니다. TV 드라마에 미스터리는 반드시 있어야 할 요소입니다. 주인공의 운명을 궁금하게 만들고, 그래서 결말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미스터리는 아주 좋은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만두의 블로그를 찾기 시작했고, 거기서 옥석을 가려내면서 추리소설을 고르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녀가 추천한 많은 책들이 저의 인터넷 서점 보관함에 들어있고, 언제가 휴가가 다시 시작하면 한 권씩 뽑아 읽으리라 마음 먹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물만두의 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저는 그녀의 다이제스트 덕분에 두세 편의 드라마 소재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로 휴가를 가시는 분은 물만두를 안내자로 삼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
- 2012/05/12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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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4/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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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영화나 책을 보지 않으실 분을 위해 조심하긴 했지만 누설된 이야기가 있을지 모릅니다.
시인 이적요는 집 안을 청소하러 방문한 고등학생 은교의 젊음에 서서히 빠져듭니다. 노인이 되어 치르는 사랑의 열병은, 문학적으로 열등감을 지닌 제자 서지우와의 갈등을 촉발시키며 그들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습니다.
영화로 바뀌면서 이런 인물의 다층적이고 복잡한 성격이 단순해졌습니다. 사랑하면서도 증오할 수 있는, 인간이란 감정의 동물이 가진 복잡성을 단순화했습니다. 저는 이런 단순화를 영화에 상업성을 넣으려 한 시도이자 영화라는 미디어가 가진 한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있었던 가장 강력한 반전을 영화에서는 욕망의 발로로 재단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영화를 본 후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은교]는 책을 먼저 봐야 합니다. 영화에는 책에서 나온 깊이와 향기를 느낄 수 없습니다.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에겐 이 영화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했던 두 남자의 몸부림'으로 보일 것입니다. 스승과 제자로서 서로가 가장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스승은 문학을 무기로 쥐었고, 제자는 젊음을 무기로 지녔습니다. [은교]는 서로에게 결여된 무기를 갖고 싶어하는 두 남자의 갈등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고등학생 '은교'의 젊음보다 더 강조해야 하는 것은 '서지우'의 젊음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은교의 젊음과 매력만을 강조했다면 정지우 감독은 원작의 중요한 쟁점을 놓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서지우 보다 은교의 매력이 스크린을 장악했음은 분명합니다. 김무열군에게 "너의 젊음을 발산하는 것이 서지우의 욕망을 표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미리 전하지 못한 것이 뒤늦게 아쉽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은교 역의 김고은입니다. 김고은을 발굴한 것은 정지우 감독이 영화의 한 축을 튼튼하게 세운 것을 뜻합니다. 영화의 은교만큼은 소설의 은교를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젊어서 아름답고 당돌해서 아름답고, 그래서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은교는 소설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려낸 듯 실감 났습니다. 김고은 양은 신인 배우라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도발적인 데뷔를 해냈습니다.
박해일의 노역 분장은 감독에게나 배우에게나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박해일은 이런 선택은 다른 무엇보다 이 영화에 생명을 불어넣고 투자를 가능하게 만든 힘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관객은 박해일의 도전을 적지않이 의식하고 영화를 보게하였습니다. 자연스러워할 노인의 설렘이 희극적으로 비춰진 부분은 그 결과로 인한 부작용이었습니다. 다행히 중반부터는 노인이 된 박해일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출이었더라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은교'는 문학이라는 옷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영화 '은교'는 예술과 상업성 사이에서 약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서지우에 관한 죽음에 관한 반전을 무시한 용기는 영화를 재미있게 하려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누적된 선택은 소설 [은교]에서 깊이 드러낸 인간이란 종족의 아이러니를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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