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조연출 시절, 한 배우를 다른 드라마와 같은 시기에 출연하도록 캐스팅했습니다. 그런데, 그 배우의 스케줄이 좋지 않아, 제 드라마 촬영에 지장이 있었습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상대 드라마의 제작진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연기자의 스케줄이 꼬이는 이유가, 드라마 주인공 집이 전라남도 광주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뜸 도대체 왜 주인공 집은 광주에 잡아서,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냐고 짜증을 냈습니다. 그때, 저를 바라보던 상대 제작진의 황당한 얼굴이 생각납니다. 그들의 마음의 소리는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배우의 스케줄이 아무리 꼬여도 그렇지, 타 드라마 촬영지가 광주이든, 서울이든 그건 제가 상관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제 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구해서 스케줄을 뽑으면 되는거지, 그 드라마의 연출과 제작 영역을 침범해선 안되는 것이거든요.

소설가는 비평가의 비평문이 마음에 안든다고 수정하거나 철회를 요구해서는 안됩니다. 소설이란 텍스트는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 독자나 비평가의 시선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소설가가 쓴 소설 'A'와 독자가 읽은 소설' A' 는 전혀 다른 의미와 맥락을 지니는 텍스트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생명과 의미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소설가가 비평가에게 전화를 걸어,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너의 비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수정하거나, 철회해달라'고 요구한다면 비평가인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겠습니까?

제가 비평가라면 제 마음의 소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구나"

참, 위에 언급한 상대 드라마는 '모래시계'였습니다. 광주에 있던 주인공의 집은 고현정이 연기한 윤혜린과 박근형 선생이 연기한 윤재용 회장의 집이었습니다. 그렇다구요.


사전 집필 시스템이 필요하다 Media

드라마 업계가 다시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사전 기획이나 프리 프로덕션 단계가 더욱 치밀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본 집필이 그렇습니다.

90년대 초반에는 드라마를 편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는데 대본이 필요 없었습니다. 줄거리와 등장인물을 소개한 시놉시스로 편성이 되었고, 그것으로 캐스팅할 수 있었으며, 이미 출연 확정된 배우들과 연습실에서 처음 나온 대본을 읽곤 했습니다.

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배우들이 캐스팅 전에 대본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드라마를 편성하고, 배우를 캐스팅하려면 최소한 시놉시스에 대본 2회 분은 쥐고 있어야 합니다. (솔직히 두 권 만으로는 좋은 캐스팅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최근 그 경향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대본 10권은 써 놔야 합니다. 그런데 이 변화의 추동은 이제 배우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요구 때문에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청률과 관계 없이, 드라마가 설정한 세계관이 끝까지 충실히 구현되는 내적 완성도가 있는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팬덤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것이 제작자로서 가장 확실한 위험회피 전략입니다. 실시간 시청률이 좋지 않더라도, 팬덤이 형성된 드라마는 입소문을 타고 VOD 수입이 올라옵니다. 광고 수입이 떨어지더라도, VOD수입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나라의 제작자와 작가들은 인식을 바꾸셔야 합니다. 시놉시스와 대본 몇 권으로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기에는, 이제 경쟁자가 너무 많습니다. 오랫동안 시청자를 속여왔지만, 이제 더이상 속이기 쉽지 않습니다.

16부작이면 10부작은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 드라마 용두사미, 기승전연애라는 오욕을 벗습니다. 이 대본 쓰고 찍느라 이 돈을 썼냐는 조롱을 피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업계에 가장 많은 변화를 목격한 것이 2017년 이었습니다. 그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화두가 사전 대본 집필인 것 같습니다. 이제 보던 드라마는 끝까지 탄력받아 본다는 ... 그 탄력이 없어진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2017 <당신이 잠든 사이에> 추석 연휴에도 방송합니다. 드라마를 찍다

9월 30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흘 간의 연휴가 생기면서, 연휴 기간에 방송하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연휴 기간에는 사람들의 이동이 많기에, 그 시기에 방송은 시청률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영화를 방송해, 드라마의 시청률을 방어했습니다. 이번에 저도 이 부분 관심을 두고 연휴 기간의 드라마 방송 여부를 편성과 논의해서 확정했습니다. 알아보니 연휴 기간 저녁에 방송하는 드라마는 전체 가구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에, 오히려 방송하는 게 유리한 것을 알았습니다. 대략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명절 당일 오후 2시이면 귀성객의 이동이 끝납니다. 저녁에 방송하는 드라마 시간대는 전체 가구 시청 인원수가 오히려 증가합니다. 저녁 먹고 오랜만에 모인 식구들이 옹기 종기 모여서 TV 앞에 모인 것을 상상하시면 됩니다.

둘째, 저녁 시간대에 유동적인 시청 층은 이미 모바일, IPTV, 1인 미디어로 시청 행태가 바뀌어서, 실제의 실시간 시청에는 이미 영향을 주지 않는답니다.

셋째, 연휴의 효과로 전체 가구 시청률이 줄어드는 시기는 오히려 연휴가 끝난 직후의 주간이랍니다. 오랜만에 쉬고 일상에 복귀에 친구들, 직장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넷째, 연휴의 같은 시간대 경쟁사는 드라마를 계속 방송하고, 우리는 영화를 편성할 때, 당연히 경쟁사는 시청률에 반사 이익을 얻습니다. 업계의 용어로 '경쟁사가 독탕을 뛰게 해서는 안 된다'고 표현합니다.

과거 제가 담당했던 박혜련 작가, 조수원 연출의 '피노키오'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1월 1일 신년 저녁에 방송하면서 크게 시청률이 오른 예가 있더군요.이런 이유로...

9월 27일 방송을 시작하는 새 수목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연휴 기간에도 방송합니다. 연휴 기간 낮시간을 통해 엄청난 재방송 폭탄을 터뜨릴 예정입니다. 종방을 향해 달려가는 '언니는 살아 있다'도 역시 방송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시고,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SBS 드라마도 많이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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