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카페인] Media

친구가 뮤지컬을 보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브로드웨이의 유명 뮤지컬도 아니고, 배우는 두 사람밖에 나오지 않는 소규모랍니다.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긴 공연 시간으로 머리를 쥐어뜯던 악몽 같은 경험을 되살려보며 런닝타임이 몇 분이나 되는지 물어봅니다. "한 시간 반." 90분이란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아 안심되긴 합니다. 그래도 배우 두 명이 그 시간을 채우는 것은 힘겹지 않을까 걱정을 해봅니다. 그래도 추위를 뚫고 대학로 서울 컬쳐스페이스 엔유로 가보았습니다.

뮤지컬 [카페인]은 한 쌍의 남녀가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바리스타 세진은 항상 결정적인 연애에서 실패하고, 떠나간 남자는 다른 여자와 곧 결혼하게 만드는(?) 연애에 소질 없는 여자입니다. 왕원화의 소설에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라는 것이 있는데 이 제목에 딱 걸맞은 여자가 세진입니다. 거듭된 실연의 충격으로 이제는 카페에서 마감 시간까지 워커홀릭처럼 일하는 데. 저녁 시간 이후 카페가 와인바로 변신하면서 소믈리에 지민이 그녀의 밤시간을 뺏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모른 체 세진의 "LOVE IS" 칠판에 지민이 낙서를 하면서 둘 사이는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그 싸움 끝에 지민은 세진의 근무 시간에 찾아갑니다. 둘이 대판 붙었을까요? 천만에요. 바람둥이, 연애 도사 지민은 '정민'이라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작업에 들어갑니다. 한편 세진도 와인바가 된 저녁 시간에 싹수 없는 소믈리에를 찾아갑니다만, '정민'은 자신의 쿨한 본모습을 숨기고 '지민'으로 변하면서 세진의 열기를 와인으로 식혀줍니다. 그 후로 세진과 '지민'은 친구로, 세진과 '정민'은 연인으로 기묘한 줄다리기를 시작합니다. 물론 연애 상담을 미끼로 세진을 속속들이 파악한 '지민'의 정보 탓에 '정민'은 세진의 마음을 마음대로 풀었다 당겼다 합니다. 예전 영화 "Thief of hearts(마음의 도둑)"의 내용이 연상되죠.


실제로는 2인극이지만 제가 본 공연에서 정상훈은 지민과 정민 1인 2역을 합니다. 그 외의 잡다한 캐릭터들도 '김지현', '정상훈' 두 배우가 멀티맨 역할을 하면서 무대를 채워나갑니다. 속도 빠른 전개와 활기있고 생동감 있는 춤으로 무대는 지루할 틈 없이 꽉 채워집니다. 제대로 된 연인을 얻고 싶은 세진의 풋풋한 마음, 장난치다 사랑의 열병에 걸린 '지민'의 능구렁이 같은 마음이 코믹과 로맨스의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무대를 뜨겁게 달굽니다.

타이밍의 승부라고 하는 코미디를 연출자와 연기자는 잘 이해라고 있습니다. 씬 전환과 감정 전환에 무대와 조명, 배우들의 동선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연출이 아주 돋보였습니다. 두드러지게 기억에 남는 멜로디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모든 노래가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저는 이 공연의 의상이 특히 마음에 들었어요. 젋고 세련된 배우들의 건강미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아쉬웠어요. 줄거리를 보신 분들은 예상할 수 있겠지만 결국 '지민이자 정민'인 사기극은 세진에게 들통이 나고 말지요. 얼어붙은 세진의 마음을 푸는 부분이 너무 쉽고 안이했어요. 초반의 빽빽하게 공들인 춤과 노래가 뒷 부분에서는 안이하게 풀려간 느낌이에요. 이 뒷부분의 극적 구조와 뮤지컬의 완성도만 살릴 수 있다면 이 뮤지컬은 대학로는 새로운 롱런극을 갖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요즘 우울해하는 친구가 있다면 손 붙잡고 다녀오세요. 아마 기분 좋은 공연 관람이 되실 거예요. 끝나고 나면 와인 한잔과 아이리쉬 커피를 드시는 센스, 꼭 가져가십시오.


덧글

  • 우유차 2012/02/04 12:34 #

    카페인은 이번이 세 번째 시즌입니다. 어쩌다 보니 매 시즌 한 번 씩은 꼭 보고 있는데요.
    롱런 요망- 뮤지컬이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예요.
    트랙백을 보낼까 하다가 너무 오래 전 글이라 링크만 쭈볏쭈볏.
    say2me.egloos.com/3443485
  • 용PD 2012/02/05 08:14 #

    제작자가 부도를 내서 공연이 갑자기 중단이 된 것을 알고 있었는데,벌써 세 번째 시즌이군요. 그나저나 우유차님도 대단하십니다. 어쩌면 그렇게 수 많은 공연을 다 보고 계시는지... 주머니가 얇아지시겠어요.
  • 우유차 2012/02/08 19:59 #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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