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Media

영화를 구분할 때 플롯 구동형인 영화가 있고, 캐릭터 발전형인 것이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 주로 전형적인 마초 남성이나, 신데렐라 같은 여성이 나와서 도무지 성취하기 어려운 목적을 달성려고 죽을 힘을 다해서 고생한다면 그 영화는 플롯 드라이브형입니다. 한편 주인공이 뭘 위해 고생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인물의 변화하고 발전하는 양상을 지켜보면서, 그 인물의 흥망성쇠를 관객이 관심 있게 바라본다면 캐릭터 발전형인 영화입니다. 캐릭터 발전형의 영화를 예로 든다면 저는 로버트 드니로가 나온 [택시 드라이브]나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을 얘기합니다. 캐릭터 발전형의 영화에서는 스토리가 관객을 옥죄는 느낌은 부족합니다만, 배우들의 매력과 장점이 물씬 풍겨 나와서 관객은 배우를 발견하거나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게 되곤 합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딱 잘라서 어느 한 편으로 분류하기는 무리합니다. 그럼에도 무리를 해본다면 캐릭터 발전형인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깡패도 민간인도 아닌, 주류도 비주류도 아닌 최익현(최민식 분)은 비리 세관 직원입니다. 그가 벌이는 마지막 한 건이 경주 최씨 종친회에 실같이 연결된 최형배(하정우 분)와 연결되면서 그는 건달 세계에 발을 딛습니다. 비리 공무원으로서 정관계의 비리 네트워크에 눈이 밝은 최익현은 그 후 형배의 두뇌이자 바람막이로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건달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닌 '반달'인 최익현은 사실 형배의 '주먹'이 없다면 모래 위의 정자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위와 무력에 대해 종종 착각하고 그로 인해 배신과 추방의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해서 이 드라마의 플롯은 '과연 최익현이 건달 세계와 80년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가입니다.' 

영화를 재미있고 빛나게 하는 캐릭터는 이렇게 항상 우리 주변에 있었습니다. 실력은 없으면서 윗사람에 밀착해있고,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편법도 법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제 주변에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조연으로는 써먹었지만, 주연으로 격상시킬 용기를 내진 못했죠. 이 영화의 강점은 이런 숨겨진 보석 같은 캐릭터를 무대 전면으로 끌어들인 힘입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빛나는 캐릭터는 80년대라는 시대배경입니다. 전두환의 쿠데타로 시작한 5공과 6공은 그 정통성의 문제가 있었기에 오히려 겉으로는 깨끗한 척하는 자기모순의 정체성을 가졌습니다. '정의 사회 구현'이니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구호가 바로 그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범죄 정권'이 무슨 '범죄와의 전쟁'을 하겠습니까? 그런 아이러니한 시대였기에 이런 회색지대의 캐릭터들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돈과 빽, 가문과 혼맥으로 연결되는 부패의 사슬이 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저는 조범석 검사(곽도원 분)가 바로 그런 80년대를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검사인지 군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그의 폭력성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결정적일 때 꼬리를 감추는 비겁함이 80년대의 의식 아닐까요?

이 영화는 최민식과 하정우의 팽팽한 긴장감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에 기대는 바가 크고, 그렇기에 배우에게 의존하는 바는 더욱 컸을 것입니다. 최민식과 하정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감정의 깊이가 듬성듬성한 것은 아쉽습니다. 캐릭터 구동형인 영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단점이긴 합니다만 최익현과 최형배의 인간적 관계나 감정의 골은 더 깊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에피소드들의 연결에 틈이 커 보이는 것이 이 영화에서 지적하고 싶은 유일한 단점입니다.

윤종빈 감독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덧글

  • 서주 2012/02/09 14:28 #

    아직 영화를 안봐서 리뷰를 피하고 있었는데, 전부터 링크해서 감사히 포스팅 보고 있던 독자라 스포(?)를 감수하고 읽었습니다. ^^; 또 좋은 지식 얻어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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