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 Media

이야기는 냉전이 극에 달한 1970년대 영국 비밀정보국을 배경으로 일어납니다. 조지 스마일리는 MI6(영화 속에서는 '서커스'라는 코드 네임으로 불리는 기관입니다.)의 고위 간부였습니다. 헝가리에서 적의 장군을 포섭하는 작전이 들통 나면서 그는 '서커스'의 수장 '콘트롤(존 허트 분)과 함께 은퇴하게 됩니다. 그 후 스마일리는 비밀스럽게 차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얼마 전 세상을 뜬 '콘트롤'은 '서커스'의 고위 간부 여섯 명 가운데 이중 스파이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헝가리 작전이 실패한 것이라는 겁니다. '콘트롤'이 스마일리와 동반 퇴직한 것도 사실은 스마일리에게 새 임무를 주기 위함이었다는 거죠. '서커스'의 동료들이 치열하게 냉전을 수행하는 동안, 스마일리는 국외자로서 '서커스'에 잠입한 소련의 스파이를 찾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의 스파이는 머나먼 적국이나 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오랫동안 생사를 같이하고 크리스마스에 함께 파티를 즐기던 친구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영화는 하드 보일드 스파이 소설의 대부 '존 르카르'가 1974년 발표한 동명의 원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존 르카르는 다른 작가와는 달리 스파이에 대해서 할 말이 많습니다. 본명이 데이빗 콘월인 그는 Kim Philby라는 전설적인 소련의 이중간첩에 의해 MI6에서 곤경에 처한 바 있는 영국 정보요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의 소설은 상상력의 소산이라기보단 현장에서 경험한 리얼리티가 속속들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1974년 작품입니다. 냉전이 끝난 지도 한참 지났고, 그럴싸한 액션이나 하이테크 도구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런 클래식이 이즈음에 제작된 것은 의외입니다. 그러나 고전의 위대함을 입증하듯, 영화는 품격과 재미를 곳곳에서 발하고 있습니다. 퇴직했어도 기개와 용맹을 잃지 않은 늙은 장수가 '스파이 영화란 원래 이런 장르야' 하고 일성을 토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현란한 자동차 액션도 하이테크 가젯도 나오지 않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 오직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그 내용을 분석해야 하는 스파이 영화의 원류를 가르쳐줍니다. 이러한 인간의 탐구가 있었기에 '스파이 영화'도 품격이 있었고, 장르물로서 영화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미션 임파스블류의 영화와는 정 반대의 위치에 서있는 것이죠.
저는 원작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를 읽었기에 존 르카르의 필체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스마일리를 비롯한 여섯 명의 인물을 복잡하게 얽혀 놓으며 어떻게 독자를 현혹하는 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방대한 디테일과 인물로 인해 독자는 진실을 향한 출구를 찾기 어렵습니다. 원작의 방대함과 섬세함을 웅변하듯, 이 영화의 구조는 복잡합니다.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있습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이면 이런 서술방식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감독은 관객과 페어플레이를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TTSS(Tinker Tailor Soldier Spy)는 관객과 영화가 머리싸움을 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독은 관객이 진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모든 실마리를 깔아 놓았고, 그 진실을 꿰맞추는 놀이가 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냉전 시대의 영국을 멋지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왠지 우울하고 냉소적인 색상 톤에, 전투의 와중에서 오후 네 시만 되면 티 타임을 즐긴다는 영국 신사의 기상을 보여줍니다. 게리 올드만, 존 허트, 콜린 퍼트, 베네딕트 컴버배치 등 익숙한 배우들이 절제된 연기를 보여줍니다. 대사보다 침묵이 더 많은 이야기와 정서를 전해줍니다. 망원렌즈를 이용해 카메라와 인물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 뜨려 놓은 영상들은 스파이들을 세계를 몰래 훔쳐보는 듯한 설렘을 느끼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사운드와 음악을 이토록 효과적으로 살린 영화는 근래에 들어 오랜만입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방문객의 문 여는 소리, 그들의 발자국 소리, 묘하게 긁어대는 보일러와 차 끓는 소리는 극의 서스펜스를 효과적으로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많은 연출이 카메라와 비주얼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영화가 쓸 수 있는 나머지 도구를 현란하게 다룬 장인이 이 영화를 지휘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했더니 "Let Me In"의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손입니다. 이 영화는 위대한 감독과 배우가 어떻게 스토리를 요리하는지 알 수 있는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그와 함께 관객을 수동적인 욕망의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해석의 적극적인 동반자로 위치시켜준 지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알아본 저는 지적인 관객입니다.

앞 줄 오른쪽 두번째에 앉아 계신분이 원작자. 

덧글

  • 한빈翰彬 2012/02/27 19:56 #

    4문단에서 줍니다로 세 문장을 연달아 끝내신 것이 조금 안타깝네요.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 용PD 2012/02/27 22:23 #

    충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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