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플랜] 선과 악은 백짓장 하나 차이일 뿐...

 

심플 플랜 - 10점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비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최악의 만남일 수 있는 이야기가 [심플 플랜]입니다. 불행하고 재수 없지만 악마의 유혹처럼 끝까지 독자를 끌어들이는 이야기가 [심플 플랜]입니다. 읽는 내내 '잘 살아야 한다.'라는 경각심을 마음속까지 새겨주는 이야기가 [심플 플랜]입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 보면 한번 쯤은 아주 억울하고 재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매주 월요일 운동장에서 열리는 조회에 반 아이들 서너 명이 나가지 않은지 여러 주가 지났습니다. 범생이 한 명이 '오늘은 나도 나가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걸리지 않았는데 새삼 걸리겠어?'라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렇게 달콤한 탈선의 여유를 부렸는데 담임 선생님이 급습을 합니다. 많이 혼나고 기합을 받습니다. 재수가 없다고 느낍니다. 


이 소설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촌에서 범생이처럼 살던 세 사람이 추락한 비행기를 발견합니다. 그 비행기에는 사백만 달러가 넘는 돈이 있었고  그 돈을 차지하기로 합니다. 쉽게 큰 돈을 차지할 수 있기에 그들은 일생을 바꿀 아주 간단한 계획을 세웁니다. 

'돈을 가져가고 모든 것이 잠잠해지도록 육 개월간 묻어두자.'


그 단순한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세 사람의 삶은 곧 생과 사를 넘나드는 갈등으로 고조되고 이야기의 끝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엇나갑니다. '아마 괜찮을 거야'라고 인생의 한 순간 긴장의 고삐를 늦추었는데 그것이 그들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냅니다.


이상의 설정이 이 소설을 출발시키는 시동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진행되면서 엄청난 공포를 가져옵니다. 평범한 사람이 최악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아주 담담하고 치밀하게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양지에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은 소설의 주인공과 같이 아주 사소한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동류감(同類感)이 독자를 무섭게 합니다. 사소한 잘못이 나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에 독자의 눈을 뜨게 만듭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느낀 순간, 한 층 더 깊은 수렁을 보여줍니다. 그 아득한 추락에 독자들은함께 심연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그 동반 추락에는 아찔함은 작가 스콧 스미스가 인간성에 대해 보여준 통찰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관찰하고 해석하는 우리의 인지적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나' 대신 '우리' 나 '가족'의 논리를 내세우며 자기 선택을 합리화하는 인간의 얄팍함에 대해 통렬한 문학적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관찰에서 벗어날 독자가 별로 없기에 이소설의 반향이 이토록 큰 모양입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이번 한번 만', ‘이 정도쯤이야’ 라고 경계심을 풀고 원칙을 무너뜨린 순간 우리는 [심플 플랜]의 행크처럼 추락할 수 있습니다. 초여름에 저는 최고의 서늘함을 선사한 쓰릴러를 읽었습니다. 그 서늘함의 잔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21/100)

by 용PD | 2009/06/02 09:00 | Media | 트랙백 | 덧글(0)

아무 생각 없이 보는 터미네이터4-반동인물의 진화



Terminator’는 복잡한 논리로 이루어진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미래, 인류는 스스로 만든 국방 시스템 스카이넷의 공격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합니다. 기계와의 싸움에 나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은 지도자 존 코너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동료 카일을 과거인 1984년에 보내 미래의 엄마인 사라 코너를 구하게 합니다. 존 코너가 카일에게 말하지 않은 임무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와 사랑에 빠져 자신을 임신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나와 가장 친한 동료를 내 엄마에게 붙여주는 겁니다.)



이보다 더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이버 다인’이란 회사가 ‘스카이 넷’이란 지능형 방어시스템을 만든 계기가 바로 미래에서 온 ‘Terminator’의 부서지다 남은 부품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존 코너가 출생하지 않았다면 ‘스카이 넷’은 ‘Terminator’를 과거로 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이버 다인’사는 ‘스카이 넷’을 개발하지 못했을 텐데, 왜 카일은 사라를 구해서 인류가 멸망할 위기를 만들었을까요? 존 코너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집착만 없었다면 애초에 인류의 위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터미네이터가 부품을 남길 이유가 원초적으로 없기 때문이죠. ‘스카이 넷’도 한심합니다. 왜 하필 1984년으로 ‘Terminator’를 보냈을까요? 사라 코너가 더 어렸을 때로 보내면 안 되었을까요?

이처럼 Terminator 시리즈의 연대기는 자기 모순에 빠질 수 있는 시간 여행의 오류에 얽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심지어 평행우주론까지 들고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는  ‘Terminator’ 시리즈에서 나온 시간여행은 제약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로봇을 보낸 시점 이전으로는 결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영화 ‘Terminator’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가역적인 것 같지만 결코 가역적이지 않고 영화 개봉의 시점과 비슷한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여하튼 이런 모순을 일일이 파헤치면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한 ‘Terminator’시리즈가 나오기 힘듭니다.



[지금부터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by 용PD | 2009/05/31 07:05 | Media | 트랙백 | 덧글(4)

근조

“And in the end, it's not the years in your life that count. It's the life in your years.”  Abraham Lincoln

결국, 한 인생을 설명하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 세월동안 어떤 삶이었느냐가 문제입니다.  (링컨)




by 용PD | 2009/05/23 21:40 | 좌고우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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