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형과의 대화


PD라는 직업이 좋은 점은 멋진 사람들을 업무를 빙자해 만나는 것이겠죠. 저는 산울림 음악의 광팬은 아닙니다만 그의 음악이 시대 보다 묘하게 앞서나간 세련미가 있었고, 그 나름의 색깔로 '산울림' 음악은 고유한 쟝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음악에는 순수하고 착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아마 김창완이란 사람의 인간미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어느 해 우연히 선배의 옆자리에서 창완형과 대화를 나눠보고 살짝 반했더랍니다. 한국판 '어린 왕자'의 중년 버전이 있다면 김창완형이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는 아직도 순수합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 분위기 그대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멋진 창완형과 아직까지 술 한잔 안 마신게 신기할 정도이죠. 제가 무심한 놈입니다. 야외 촬영장에서 김창완형과 나눈 대화입니다.

김창완 : 감독님, 내 역할에 대해서 뭐라고 설명해야돼?
용PD: 형이 한 나쁜 짓 때문에 이 드라마가 시작되었으니 '악의 축' 아닐까요?

김창완: 음, 근데 우리 드라마 퓨젼이야?
용PD: 퓨젼이라는 의미가 워낙 광범위하게 쓰여서 좀 혼란스러운데요. 퓨젼이라는 의미가 사극의 탈을 쓰고 현대인들이 하는 짓들을 그렸다는 의미라면 저는 [일지매]는 퓨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왜 그런 질문을... 

김창완: 응, 너무 퓨젼으로 그릴까봐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드라구. 그래서 감독은 정극처럼 그릴 작정인가봐라고 전해줬어.
용PD: 예. [일지매]는 조선의 한 시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드라마여요. 예를 들어 [롬 ROME]이란 드라마는 시이저의 왕정에 반대한 브루터스의 반혁명 시도란 역사에 근거하지만, 그 이면에 시이저에게 버림 받은 부르터스 엄마의 부추김을 넣어 드라마적인 재미를 살렸잖아요. 우리도 그런 역사의 빈구석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롬]은 퓨젼이란 소리를 안하던데...

김창완: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탰다...
용PD: 뭐랄까, 미술이나 음악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하고 있으니 그런 면에서는 퓨젼이죠. 우리 드라마 외국에서도 볼 지 모르니 좀 세련되게 보이고 싶고,그런 의미에서 음악도 일부러 국악기는 자제하고 녹음하자고 의견을 냈죠. 글로벌 스탠다드에 접근한다고 말하면 좀 쑥스럽지만...

김창완: 근데 방송이 언제야? 자꾸 왔다갔다해서 누가 물어보면 대답하는데 박력이 없잖아.
용PD: 5월 28일 수요일부터예요. [온 에어] 후속으로... 인제 박력있게 대답하세요. 

중년 어린왕자 김창완 형은 그날 새벽 3시까지 저와 충북 화양계곡에서 촬영을 하셨습니다. '창완형!'하고 부르면 마치 소년처럼 '옛'하고 대답하는 늙은 어린 왕자는 다음날 아침 변함 없이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졸린 듯한 목소리를 내보내셨습니다. 피곤하셔서 그런지 다른 날 보다 유독 음악이 많더군요. 창완형, 다음에 만날 때는 술한잔 하깁니다. 



창완형, 미안합니다. 형 빙자해서 드라마 홍보했습니다.

by 용PD | 2008/04/13 15:44 | 일지매 | 트랙백 | 덧글(22)

담배 끊읍시다


좋아하는 선배인 P형이 암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좋은 사람이자 멋진 예술인이었던 P형의 발병 소식에 발 밑이 꺼지는 황당함을 느낍니다.
쾌유를 빈다는 인사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담배 원망을 합니다.

암이란 병의 많은 이유가 유전적 요인에 있다고 합니다만, 흡연이 발병 요인에 하나임은 부인하지 못할 사실입니다. P형은 담배를 많이 피웠는데 그것이 그의 폐를 힘들게 한 거라고 원망을 해봅니다.

저는 담배를 고3 시절에 배웠습니다. 담배를 자유의 상징처럼 여겼기에 대학 시절 내내 줄곧 피웠습니다. 흡연의 습관은 방송국에 입사해서도 죽 이어졌는데 어느 힘든 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밤새고 운동도 못하고 식사도 불규칙적인데 도대체 내 몸을 위해서 할 수 있는게 뭐냐?"

그래서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것이 97년이고 2002년까지는 술자리에서만 흡연을 했습니다. 2002년 부터는 그나마 끊었기에 이제 완전히 금연에 성공했습니다. 금연에 성공했다는 것도 대단한 성취감이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가족에게 떳떳하다는 겁니다.

아빠가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흡연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흡연하면서 아이에게 '담배피지마라'는 훈육은 모순일 수 있습니다. 담배 피지 않는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담배는 좋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담배 피는 모습, 멋있지 않습니다. 냄새가 납니다. 만성화된 중독 상태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 니코틴을 공급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스탭들에게 제 주변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게 합니다. 아예 첫 스탭 회의에서 '내 옆에서는 담배피지 마라'고 부탁합니다. 간접 흡연으로 현장에서 피로감이 더 해지기 때문입니다. 꽁초를 버리면 벌금을 받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다음에는 담배 끊지 않으면 다시는 같이 일하지 않을 것이라 반 공갈을 합니다. 하루 두 갑 담배를 피워 5000원씩 지출을 하면 1년 180만원입니다. 그 돈을 살살 모아 펀드에 가입하면 나중에 멋진 여행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금연의 요령이 있습니다.
첫째, 단번에 끊어야 합니다. 줄이는 것 소용이 없습니다.
둘째, 주위에 소문을 내며 끊어야 합니다. '담배피다 걸리면 만원줄께'와 같은 공개적 선언이 금연 의지를 굳히는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신상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금연을 잠시 미뤄야합니다.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 금연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넷째, 심심한 입을 대신 채워줄 대용품, 예를 들어 껌 같은 것을 준비해서 입을 달래야 합니다.

금연하면 일주일부터 약 3주간 금단현상이 나타납니다. 우울해지고 초조해집니다. 자다가 벌떡벌떡 불안해져 일어나는 것이 저의 금단현상아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니 안정기가 찾아왔습니다.

담배 끊으세요.
그리고 P형의 쾌유를 빕니다.

by 용PD | 2008/04/08 19:56 | 트랙백 | 덧글(2)

이문식씨 이 뽑은 사연


[일지매]에 배우 이문식씨가 일지매의 양아버지 쇠돌역으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문식씨는 쇠돌역을 위해 멀쩡한 앞니를 뽑으셨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은 아래의 링크로 가셔서 확인하십시오.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0710/sp2007101707243658390.htm

이문식 발치에 관한 이유는 설이 오가고 있습니다. 얼굴을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배우가 멀쩡한 이를 뽑았기에 여러가지 설이 돌고 있는데 제가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치과치료변명설 입니다. 이문식씨는 평소 앞니에 심한 충치를 앓고 있었는데 마침 일지매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를 뽑았습니다. 배우로서 신상에 변화(?)가 생긴 이문식씨는 발치(發齒)의 이유를 [일지매]에 덤태기 씌우기로 작정하고, 치아 관리에 소홀한 책임을 회피합니다. (일지매 연출부 이론)

둘째, 연출강권설입니다. '연출이 앞니를 뽑는 조건으로 캐스팅하겠다' 해서 눈물을 머금고 이문식씨는 이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로 배우 본인이 사방에 퍼뜨리고 있는 설입니다. (이문식 주장이론)

세째, 의욕과잉설입니다. 이문식씨가 어찌하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까 고민하다 앞니를 빼기에 이르렀고, 이를 수습하고자 연출과 작가는 쇠돌이의 빠진 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대본에 추가했다는 것입니다.(용PD 주장이론)

첫번째 이론은  발치한 이의 위치가 충치 등 치과질환이 잘 발생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눈에 띄기 좋은 앞니인 것을 감안한다면 낭설로 보입니다. 두번째 이론도 무명배우도 아니고 잘 나가는 배우에게 연출이 강요했다는 것이 이치가 맞지 않습니다. 영화와 TV에서 잘 나가고 있는 주연급 배우에게 조연 역을 제의했을 때 솔직히 연출자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더구나 저는 배우의 신체를 함부로 훼손하려는 막되먹은 연출이 아니어서 두번째 이론은 제게는 좀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세번째가 제일 진실에 가깝다고 소리높여 외칩니다.

캐릭터에 대해 상의하던 중, 저는 이문식씨에게 다모의 '마축지'와 차별된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그 자리를 달구웠던 막걸리가 분위기를 상승시켰고, 이문식 형이 '한번 이를 뽑아볼까요?' 하고 던지기에 술김이었는지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고개 짓은 취기에 끄덕여진 것이지 이를 뽑으라는 의사 표시는 아니었습니다.그런데 며칠 뒤 이를 뽑았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 경천동지할 사실은 SBS 수뇌부에까지 보고되었고 화들짝 놀란 저와 작가는 '이왕 뽑았는데'하며 쇠돌이의 발치(發齒) 사연을 대본에 반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놉시스에 없던 쇠돌의 이 뽑은 얘기가 대본에 반영된 것이 제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정황적 증거입니다.

여하튼 이문식씨 덕에 현장이 아주 즐겁습니다. 캐릭터를 위해 몰입하고 노출 연기까지 몸사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존경스러울 정도입니다. 촬영 짬짬이 끊임없이 대사를 반복해 읇조리며 연습을 하고, 이미 촬영한 대사를 다시 외며 재검토합니다. 그래서 지나간 샷들을 재촬영 해달라 슬며시 요구해 스텝들의 빈축을 사지만 이 역시 즐거운 과정입니다.

[일지매]를 위해서 많은 캐릭터들이 극중에서 목숨을 잃는데 쇠돌이 또한 그렇습니다. 이 좋은 배우를 빨리 보내기 아쉬워 작가와 저는 매일 전전긍긍 하고 있습니다. 쇠돌이 이문식 화이팅입니다.


by 용PD | 2008/04/04 16:14 | 일지매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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